가정생활

나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정수 티스토리 2023. 1. 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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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아이가 수시로 서울에 위치한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과 또한 약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약과 관련된 학과로 장래에 좋은 직장에 입사도 가능하고 제약 관련 일도 할 수 있어 미래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거 같아 참 기분 좋았다. 부모가 되어보니 이런 날도 오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로 느껴진다. 요즘은 딩크족이니 뭐니 해도 자녀가 있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은 거 같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등록금 문제로 아주 곤욕스러웠다.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내가 기분 좋아 등록금은 내가 낸다고 큰소리를 친 모양이다. 그러니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다행히 작년 이맘때 들은 적금이 있어 그것을 찾아 쓰기로 하니 마음 놓였다. 그동안 집값 갚는다고 적금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작년에 다 갚아 기분 좋게 나를 위해 적금을 작게 들었다. 나중에 이걸로 뭐를 쓸까 순간 즐거운 고민도 해봤다. 그런데 아이의 등록금이 딱 나의 적금 찾는 금액과 같았다. 정말 신기하면서도 대학 등록금이 엄청난 양이란 점에 또 놀라웠다. 내가 학창 시절 대학 다닐 때 국립이라 그런지 정말 등록금이 정말 쌌다. 부모님께서 부담도 전혀 없을 정도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효자 중에 효자이다. 

 그렇다고 등록금만 해결되면 끝인가? 기숙사에 당첨이 안되면 바로 월세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정말 기숙사를 떨어지며 월세를 구하러 서울을 헤집고 돌아다녔고, 수도권 월세는 이미 지방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금액에 셌다. 게다가 생활비는 어떻고. 이건 뭐 끝이 없는 거 같다. 정말 아이를 위해 부업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은행에서 이상한 메시지가 왔다. 또 카드값 독촉인가? 싶었는데 작년부터 보험금이 완료되었는데 왜 찾아가지 않느냐는 메시지였다. 젊은 시절 첫 발령 후 어떻게 시작한 지 모르지만 월 2만 원씩 보험료를 내고 있던 상품이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작년에 끝나면서 보험금을 환급해 준다는 것이었다. 내가 왜 잊었는가 생각해 보니 환급형이 아니라 소멸형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설마 하는 마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은행에 가보니 무려 받을 금액이 300만 원이나 되었다. '월 2만 원씩인데 기간이 많으니 이렇게도 되는구나!' 놀라운 마음에 바로 내 통장으로 넣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간 아이 등록금을 준비하며 뭔가 찡찡대었던 내 모습에 웃음이 났고 설 명절에 어머니께서 오셨는데 남루한 잠바에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어머니께 "날도 추운데 좀 좋은 잠바 없냐"며 물었더니 이것도 좋다며 손때 붙은 잠바를 아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집사람 몰래 어머니께 잠바값이라며 휴대폰으로 송금하고 기분이 좋았다. 이상하게 집사람 모르게 들어온 돈은 내가 그동안 쓰고 싶은데 쓰는 게 기분 최고였다. 

 나는 그동안 참 기분이 디프레스 되어 있었다. 하고자 하는 일 거의 100% 실패했고 돈이 없어 항상 쪼들리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도 참 좋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물론 평소에 나에게 "뭐 하는 게 있냐"며 흰소리를 하던 집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돈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것에 약간의 켕기는 마음도 있지만 이렇게 공돈이 들어왔을 때 뜻깊게 쓰게 되어 너무 좋다. 소액 보험도 들어둘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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