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쓰기
대한민국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
정수 티스토리
2023. 12. 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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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가르치던 학생 중의 한 남자아이가 수업시간에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 녀석을 2년 전에 담임을 맡아봤기에 성격이며 속마음까지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 6학년이 되면서 점점 과격해지는 말과 행동에 조금 의아해했었다. 탁구를 해보고 싶다는 말에 들여놓았다가 평소와 다르게 연습도 안 하고 간식만 몰래 빼먹는 등 다른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나가라고 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그 아이의 마음을 변하게 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수업을 하고 있는데 그 아이의 행동이 과격해지더니 점점 통제불능상태에 빠져 내가 사무실에 잠깐 있으라고 했는데 그게 문제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그 아이 부모가 창고에 아이를 가두었다고 정서적 아동학대를 하였다며 나를 고발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고 해명을 하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것에 진심으로 사과를 해도 소용없었다. 교육청으로 찾아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내 입장과 학교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내가 그 아이 아빠와 엄마에 번갈아가며 상황을 설명하고 또 사과를 드려도 이미 아동학대를 하였다고 선을 긋고 내가 어떻게 되기를 학교를 통해 압박해 왔다.
끝내 나에 대한 학교장 서면 경고와 그 학생과의 완전한 분리가 학교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체육 물품을 구입하려고 하는데 학교 관리자가 이번 일을 계기로 계속해서 나의 문서를 결재하지 않고 어느 후배 교사가 나에게 와서 문제점을 얘기하며 다시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알았어!"라고 말은 했지만 속은 좋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문서를 수정했다. 하지만, 또 돌아오는 것은 관리자의 명을 받은 후배 교사의 수정요구였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구나!'라고 느꼈을 무렵 그 후배 교사가 오후에 나를 찾아왔다. 다 알았지만
"어쩐 일이야? 바쁠 텐데..." 나는 애써 웃으며 맞이했다.
"죄송해요, 선배님."
마음이 아팠다. 내가 경력이 있으니 차마 나에게 뭐라고 못하고 애꿎은 후배 교사를 시켜 문서수정을 요구한 것이다. 내 예상이 맞으니 그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알아서 처리해, 난 이번 일에 빠질게"라고 얘기하며 은근 슬쩍 일에서 빠졌다. 주말에 선후배들 만나 체육행사를 갖고 평소와 다르게 분위기 휩쓸려 술을 진탕 마셨다. 집에 터덜터덜 걸어오다 대학생 시절부터 친한 후배에게 전화 걸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당연히 이번 일이 포함되었다. 나를 위로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아동학대를 했던 나를 비난했으며 관리자의 결재 반송 건도 나중에 몇 년 차 안 되는 선후배들인데 퇴직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나를 몰아붙였다. 어느새 집에 도착해서 씻지도 않고 피곤한 몸으로 누우려 하니 아까 전화했던 그 후배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지가 뭐를 안다고 나를 이렇게 몰아세울까?
또 다른 친하게 지내는 후배는 나에게 선배 쯤되니까 견디는 것이라고 보통 교사들은 아동학대 이슈만 발생해도 일단 병가를 쓰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런 마음의 동요 없이 생활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했다. 나라고 심적 동요가 없었겠는가? 집에 있는 아이들을 보고 견딘 것일 뿐이다.
요즘 느끼기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지옥임에 틀림없다. 뭐만 작은 일이 있어도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학부모나 아이들 교육을 잘 시키기 위한 교육 자료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결재 반송으로 구입도 못하게 하는 관리자나 가장 친하게 지내던 후배교사가 소식 들었다면서 나를 몰아세울 때 나는 이곳이 지옥과 다름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집사람 마저 요즘 처갓집에 소홀하다며 다른 동서들과 비교하는 말들. 너무나 마음 아프다. 도대체 대한민국 가장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며칠이 흘러 분리된 아이들의 활동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봤다. 정말 구질구질했다. 나 싫어 떠난 아이들인데 내가 왜 신경이 쓰일까? 난 아직도 너무나 억울하고 그 아이나 부모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 하지만, 나이 들어 보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분명하다. 그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같은 교직에 있는 집사람도 이제는 내가 방식을 바꿀 때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나는 예전에 나를 가르치시던 선생님들이 가끔 떠오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도 그분들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내가 교사가 되어 보니 알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더라도 받아들이는 상대가 싫다면 싫은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참 어렵고 슬픈 일이란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배웠다.

집사람 생일이라 생애 최초로 미역국을 끓여줬다. 은근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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