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던가 둘째 아이가 초등학생 시절 운동회를 한다기에 가본 적이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아빠들 나오라고 해서 이어달리기를 시켰다. 달리기에 소질이 없었던 나는 정말 눈물을 머금고 열심히 달렸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부끄러운 마음에 어디라도 숨고 싶었는데 멀리서 어느 여자 선생님이 모습이 보였다. 큰 키에 멋진 외모 체육복을 입고 있던 선생님의 모습에 홀딱 반했다.
기혼자라고 해서 멋진 여성이 눈에 들어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그분은 참 괜찮은 분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각자 열심히 자기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사인 친구들이 운영하는 네이버 밴드에 이상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우리 지역에서 교사 누군가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는데 젊은 여성분이라고 했다. 나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집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같은 교사인 집사람이 이번에 돌아가신 분과 같이 근무했다고 하니 그 충격이 심한 듯 보였다. 한참의 통화 끝에 나도 뭔가 심각한 이야기구나 느낌이 들어 혹시 우리 지역 그 사건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얼마 전에 돌아가신 여성 분이 바로 그 멋진 체육 여자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 부분에서 나도 충격이 컸다. 마치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이 돌아가신 것 같은 마음의 충격을 받았다. 아직 앞길이 창창한 분이고 멋진 외모에 긴 머리카락까지 짧은 순간이지만 선명한 기억이 나기에 슬픈 마음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인생은 길고 즐거운 일도 많을 텐데.
그래서였을까? 오늘 저녁을 먹으며 막내아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어차피 죽을 건데 뭐 하러 열심히 살아야 하나?"였다. 나와 집사람은 놀라 네가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도 하고 즐겁잖니라며 타일렀다. 나는 사실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생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줄이야! 나도 어린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외가 쪽 누군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께 사람은 모두 죽는 거냐며 울었던 생각이 든다. 그게 5살쯤 된 듯싶다. 그 후 받아들였고 다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들로 태어난 우리 막내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항상 군대 가는 걱정을 했다. 나는 항상 그 얘기를 들을 때면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말하곤 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예전 나의 글 중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어 전체 주제를 잡고 쓴 적이 있다. 오직 그분을 위해 시작한 일이라 생각 든다. 그런데 1년 사이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마음이 무겁고 슬프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차피 나이 들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삶이 아름답다고 내가 좋아하는 SF영화대사에 나왔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 말 뜻에 동의했다. 내가 만약 로봇인간처럼 죽지 않고 천년 이상을 산다면 지금 삶이 얼마나 지루할까?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정말 어려운데 그것을 천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비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내가 주어진 삶 속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퇴직하면 나는 사회적으로 충분한 인정과 스스로의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군대생활로 치면 어차피 전역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힘든 훈련도 얼차려도 구타까지도 견디게 했던 것은 군대생활의 끝이란 게 분명히 존재한다라는 점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중에 심야심당이라고 배우에서 무당이 된 정호근 님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지금 힘들어 일하기 싫다고 외면하고 살면 다음 생엔 더욱 무거운 짐을 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탁! 무릎을 치고 말았다. 맞는 말이다. 다음 생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생에도 문제가 생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오늘 참여할 운동에 열심히 안 한 아이는 다음 시간에 그것과 관련하여 꼭 문제가 생기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우리네 교육과정이 그러하다. 전차시에 배운 내용이 다음차시에 꼭 심화발전하는 형태이다.
지금이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든 분들께서도 이것을 꼭 느끼셨으면 좋겠다. 혹시 나쁜 생각을 먹고 계신 분이라면 지금 괴롭다고 삶을 외면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 꼭 이겨내셨으면 좋겠다. 어떤 면에서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인 듯싶다. 그렇게 뭐를 좀 하고 싶어 노력해 봐도 항상 결과가 참패이다. 도대체 기회란 게 안 생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삶에서 성공은 뭔가를 이루는 게 아니라 버텨내는 게 성공이라고 한다. 지금의 나에게도 괴로운 누군가에게도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짧은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 (0) | 2023.12.24 |
---|---|
발바닥에서 자란 털 (0) | 2023.06.19 |
서울 원룸 (0) | 2023.01.30 |
운동화 트라우마 (0) | 2023.01.20 |
노래의 즐거움 (0) | 2022.1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