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인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네 뜻대로 해라"하고 그냥 넘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현실화되니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고등학생시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나는 제2외국어로 중국어 반이 되었고, 친구는 공부를 잘했는지 독일어 반이 되었다. 그때 당시 독일어 반은 우수한 아이들이 밀집되어 있어 은근히 비교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여튼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의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찾는다고 하였다. 교무실에 갔더니 나를 붙잡고 한참 나의 친구의 가정사정이나 성격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매일 보던 친구가 무슨 사고라도 쳤나 궁금하였다.
그때부터였을까 친구는 학교를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 우리 집과 가까웠던 친구집을 찾아갔다. 평소에 워낙 친하게 지냈던 터라 친구의 부모님이 마치 나의 부모님과 같았고 친구의 동생들은 나의 동생들이었다. 그렇게 친구집을 찾아갔고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학교를 안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를 듣게 되었다. 1학기 때 반장선거를 나갔는데 반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반장 역할을 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학교로부터 반장 임명을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오잉? 무슨 반장이 학교 뜻대로 되고 안되고 가 있나?' 나는 궁금했지만 그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에는 성적이 평균 80% 이상이 되어야만 간부로서 임명이 되는 것이었다. 그 규정을 친구의 담임선생님께서 인지를 못하셨고 그냥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반장선거를 했고 친구가 반장이 된 것이다. 지금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겠는가라고 묻는다면 할 말 없지만, 그 당시 분위기가 그랬고 지금도 그 학교는 이 방침을 유지하는 듯싶었다. 그렇게 성적이 친구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친구는 그 길로 학교를 나가지 않았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나에게까지 담임선생님께서 도움을 요청하신 것이었다.
"야~ 학교 가자!" 나는 그 길로 아침부터 친구집 앞에서 친구의 등교를 종용하였다. 내가 학교에 조금 늦더라도 괜찮을 정도로 나에게 친구의 등교는 학교에서 조차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데리고 학교 갔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친구는 아예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속이 타들어가는 친구의 아빠는 나를 데리고 밥을 사주며 내 아이 좀 살려달라고 할 정도로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어느 날 밤 그 친구는 나를 불렀다. 동네 어두운 골목에서 동네 형들과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왜 그동안 그 친구가 학교를 멀리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밤새 동네 형들과 놀러 다니니 아침에 아예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부터는 그 친구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의 말도, 담임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에도, 부모님의 타들어가는 속도 아무 소용없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야! 너 계속 그렇게 할 거야?", "..." 돌아오는 대답은 묵묵부답이었다. 끝내 그 친구는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 나이가 들어 돌이켜 보니 학급 반장에서 떨어진 것도 학교를 그만두는 결정적인 사유는 아니듯 싶다. 그냥 그만두고 싶은데 명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의 행동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후 그 친구는 직장에도 다니고 결혼도하고 잘 살고 있는 듯싶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당시 중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몰려다니며 컴퓨터 게임도 하고 비디오 테이프로 집에 몰려다니며 영화도 보고 당구를 배운다고 몰래 당구장에 출입했던 다른 친구들과는 연락을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는 그만큼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뭘 크게 배운다기보다는 고등학교를 나온다는 것은 그만한 인내심과 그곳에서 길러지는 사회성이 우리가 사는 인간계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자녀가 공부하기 싫다고 학교를 안 나간다고 하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며칠을 아이가 학교를 빠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안 되겠다 싶어 조퇴를 내고 집으로 향하면서 무슨 말로 아이의 마음을 되돌릴까 고민했다. 갑자기 얼마 전에 해준 쌍꺼풀 시술 후 뒤트임을 하고 싶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갔다. "너, 뒤트임해볼래?" 세상 모든 일과 등진모양으로 누워있는 아이에게 대뜸 이렇게 말하니 그동안 침대에서 나올 기미가 안 보이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학교에 간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무수히 "네가 원하는 거 뭐든 사줄게"라고 해도 시큰둥하더니 뒤트임이라는 한 단어에 무슨 기운을 차렸는지 학교에 간다고 했다. 나는 그날 학교에 데려다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집사람도 포기한 일을 내가 해냈구나! 평소에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항상 귀를 열고 있던 게 오늘의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 듯싶어 기뻤다. 그 후 아이는 지금까지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을 안 받으면 사람으로서 살기 어렵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정받기 어렵다. 이유가 어떻든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가 크다.
'짧은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복이란 (1) | 2024.01.18 |
---|---|
고마운 선생님 (1) | 2024.01.14 |
나는 Solo (0) | 2024.01.02 |
후회는 항상 늦다. (1) | 2023.12.29 |
대한민국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 (0) | 2023.12.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