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참 특인한 경험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에서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는데 나는 그 기회가 아프면서도 강렬하게 찾아왔다. 때는 군시절 수송반이었는데 그때 선임이 되어 분대장을 맡고 있었다. 운전은 군대 가기 전에 1종 보통면허를 가까스로 취득했기에 별 문제없었는데 정비가 항상 문제였다. 군대차는 크기도 다르고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우리 내무반이 관리하는 트럭만 14대, 지프차 1대, 통신차 1대 등 마치 웬만한 수송회사 규모였다.
신병시절 나는 난생처음 큰 트럭을 배당받아 매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트럭에 대해서는 문제가 생겨도 어느 정도 고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내 바로 아래 후임은 인물도 좋고 서울 출신이라 수도권 지리도 밝아 지프차를 배당받아 관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 후임이 휴가를 떠나고 벌어졌다. 그날도 평소처럼 차량들을 돌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정문에 지프차 준비해!" 상부의 명령이 떨어져 부대원들과 지프차를 가지러 갔다. 그런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분대장인 나도 가끔 지프차가 궁금해서 시동을 걸어보고 영내를 한 바퀴씩 신기해하며 돌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날은 추운 겨울 날씨라 그런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아래 후임병들에게 어떻게 해보라고 했더니 점화플러그가 얼어 시동이 안 걸린다며 플러그를 빼서 닦으면 시동이 걸릴 거라며 점화플러그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뭐 하나? 한참 전에 지프차 준비하라고 했는데!" 차를 바로 준비하지 않으니 상부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는 몸이 달았다. 어떻게 좀 해보라며 후임들을 닦달해도 점화플러그를 모두 빼서 닦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끝내 지프차를 준비 못했고 나는 "도대체 차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시동이 안 걸리냐?"며 한참을 혼이 나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지프차 운전을 하는 후임이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고 나는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후임의 웃으며 하는 말에 기가 막혔다.
겨울철에는 초크라는 장치를 당겨놔야 외부의 찬 바람이 엔진으로 안 들어와 시동이 걸린다는 것이다. 군용차는 우리가 흔히 쓰는 승용차와는 다른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 후 내무실에 비치하고 있으나 읽지 않았던 지프차 사용 설명서를 찾아 읽게 되었고 후임이 말했던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등골에 땀이 나는 거 같다. 그 후 군대에서도 공부를 해야 살아남는다라는 것을 피부로 깨달았고 책을 가까이했다.
요즘 나는 되는 일이 없다. 직장에서도 승진을 못했고 가정에서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항상 핀트가 어긋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싶었다. 그래서일까? 가슴이 답답하고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다. 아마 누구나 나와 같은 마음의 병이 생기는 거 같다. 그런데 오늘따라 군대시절이 생각났다. 바로 책을 통해서 쉽게 해결될 수 있었던 일이다.
나의 가슴 답답함도 어쩌면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전의 마음 답답함이 풀리고 마음이 가라앉는 거 같았다. 혹시 나와 같은 상황의 어른들이라면 책 읽기를 권하고 싶다. 무엇을 해도 가슴 답답함을 느낀다면 책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곳에 길이 있는 게 아니라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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