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강당에서 체육수업을 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내일 강당에서 행사를 했으면 하는 연락이었다. 강당에서 체육수업을 하고 있으면 1년에 몇 번은 학교 행사로 강당을 빌려줘야 했다. 이번에는 음악행사로 '학교로 찾아가는 클래식'이란 프로그램이었다. 평소 수준 높은 교향악단이 학교를 찾아와 공연을 하는 모습을 유심히 봐온 터라 나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수업이 겹쳐 못 듣게 된 게 못내 아쉬웠다. '영상을 찍어 달라고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초상권도 문제이고 내가 하는 업무가 아니라서 말 못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분주히 움직이는 음악인들을 보니 왠지 부러웠다. 내가 수업을 가기 전 잠시 들어보니 가슴을 울리는 소리에 감명을 받았다. 역시! 음악이 최고구나. 나는 교실에서 체육수업을 하기로 하여 교실로 향했다. 이번에 체육수업은 미술을 결합한 형태로 금주에 대한 주제로 간단하게 그림을 그려보는 활동을 준비했다.
'뭐예요? 왜 체육을 교실에서 해요."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소가 제약이 있어 저학년만 클래식을 듣게 하고 고학년은 그냥 수업을 진행했기에 자신들도 클래식 듣고 싶다는 말이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하얀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누어 주고 금주 포스터를 그리게 했다. 그리면서 나중에는 이거 너무 재미있다며 좋아했다. 나도 아이들의 그림을 살펴보니 왜 그렇게 독창적이고 좋았던지 웃음이 나왔다. 어느 아이가 소주 그림을 그렸는데 기가 막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군 시절 소주 마셨던 생각이 났다.
군 졸병시절 갑자기 작업을 많이 하고 쉬지 못하니 허리가 탈이 났다. 끝내 의무실에서 누워있는데 같은 내무반을 쓰는 나의 바로 밑 후임이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왜 왔어?", "저도 허리가 아파서요" 나는 내무반에서 침상을 닦는 역할인데 내와 내 후임이 없으면 누가 닦나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는데 이 후임병이 나에게 뭔가를 꺼내었다. 소주였다. 병 소주가 아니라 작은 종이팩에 담겨있는 소주를 두 개나 갖고 왔다. "와! 맛있겠다" 나와 그 후임 잠자기 직전 그 소주를 한 팩씩 마셨다.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게다가 둘 다 졸병시절이니 이보다 더 좋은 위로가 없는 듯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의무실 문이 열리더니 "동작 그만!"이라며 무서운 선임하사가 들어왔다. "모두 일어나!" 나와 그 후임도 일어났다. 갑자기 그 선임하사가 소지품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정말 살벌했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아~ 드디어 꼼짝없이 걸렸구나. 허리도 아픈데 이젠 군기교육대에 가게 생겼구나." 아무리 세상에 날고 긴다 해도 먹었던 소주팩까지는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런데 선임하사가 이불속까지 모두 뒤졌는데도 소주팩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씩씩대던 선임하사가 분하다는 양 돌아갔고 모두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숨이 멎는 듯싶었다. "어떻게 된 거야? 소주팩은 어디 있어?"
나는 온몸에 힘이 풀리고 숨이 멎는 듯한 질문에 후임은 웃으며 신었던 양말을 보여줬다. 그 안에 빈 소주팩 두 개가 들어있었다. 그것도 각각 하나씩. '하~' 그 짧은 일어나는 순간에 그 후임은 소주팩을 양말에 숨겼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대단했던 순간이었다. 만약 걸렸더라면 졸병인 우리는 그 후 군생활 정말 꼬일 뻔했다. 그 후 그 후임에 정말 재미있게 군생활 할 수 있었다. 나보다 한 살 많았는데 군대 내에선 나에게 깍듯했다. 그 당시 수도권에서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의 기지를 발휘하여 지금쯤 좋은 가장에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을 것이라 생각 든다. 그 당시 나는 무슨 이런 지옥 같은 곳이 있나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곳은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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